이상심리학

이상심리학에서 건강염려증과 신체형 장애

pinker-notes41 2025. 7. 15. 20:30

건강염려증과 신체형 장애의 개념

이상심리학에서 중요한 진단 범주 중 하나가 바로 건강염려증과 신체형 장애입니다. 건강염려증은 DSM-5(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매뉴얼)에서 ‘Illness Anxiety Disorder’로 정식 분류되며, 과거에는 ‘히포콘드리아시스(hypochondriasis)’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는 실제로 특별한 신체적 질병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는 생각이나 두려움에 지속적으로 집착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단순한 걱정이나 관심 수준을 넘어 사회적, 직업적, 일상 기능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만큼 강렬하고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신체형 장애는 신체형 증상장애(Somatic Symptom Disorder)로 분류되며, 다양한 신체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들은 증상의 원인이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거나 경미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건강이나 증상에 대한 과도한 불안과 걱정을 호소합니다. 건강염려증이 ‘질병에 걸릴까 봐’ 두려운 데 반해, 신체형 장애는 ‘실제로 존재하는 신체 증상’에 대한 비현실적으로 과도한 반응이 더 두드러집니다.

 

이상심리학에서 건강염려증

건강염려증과 신체형 장애의 원인

이 두 장애의 원인은 다면적입니다. 인지적 관점에서는 건강염려증과 신체형 장애 모두 ‘부정확하고 과장된 건강 관련 신념’이 핵심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일상적인 신체감각(두근거림, 미열 등)을 심각한 질병 신호로 해석하고, 그에 따라 불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이런 인지 왜곡은 가족 내에서 질병에 대한 과한 걱정이 학습되거나, 미디어 등 외부 요인에 의해 강화되기도 합니다. 또한, 어린 시절 부모의 과잉 보호, 신체적 질환에 대한 가족력, 반복적인 병원 방문 경험 등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정신역동적 관점에서는 삶의 스트레스, 심리적 갈등, 충족되지 않은 정서적 욕구 등이 신체 증상으로 전환(예: 신체화)되면서, 내적 갈등이 외부로 표현되는 것으로 봅니다. 행동주의적 입장에서는, 신체 증상으로 인해 관심, 보호, 휴식과 같은 이차적 이득을 얻게 되면 증상 자체가 강화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진단과 임상 현장에서의 접근

DSM-5 진단 기준에 따르면, 건강염려증은 적어도 6개월 이상 건강에 대한 불안이 지속되어야 하며, 반복적인 건강정보 탐색, 의료기관 방문, 신체 검진 요구, 반대로 단순 증상조차 무시하지 못하고 과도하게 염려하는 행동 등이 동반됩니다. 신체형 증상장애 역시 주된 신체 증상(예: 통증, 소화불량, 피로 등)이 지속되고, 그에 대한 걱정, 불안, 반복적 평가 및 건강 관련 행동이 삶의 질을 심각하게 저해할 때 진단합니다.
임상적으로는 반드시 신체적 기질성 질환(암, 심장질환 등)과의 감별이 중요하며, 의료진의 충분한 검사와 상담을 거친 후에도 설명되지 않는 경우 심리적 평가가 필요합니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자세한 병력 청취, 스트레스 이력, 성격 및 가족 환경 평가 등을 통해 진단을 내리고, 치료가 필요한지를 결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의료진과 심리 전문가 간의 긴밀한 협력이 중요하며, 불필요한 의료 검사를 반복하는 ‘의료쇼핑(medical shopping)’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됩니다.

 

치료 원칙과 실질적 조언

건강염려증과 신체형 장애의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스스로가 자신의 증상이 ‘상상’이거나 ‘꾸며낸 것’이 아님을 인정받는 안전한 치료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많은 내담자가 반복적으로 검사를 받고, 의료진이나 가족에게 자신의 고통을 설명하려 애쓰지만 제대로 공감받지 못해 오히려 불안과 고립감이 커지기도 합니다. 이런 내담자의 경험을 존중하고, 증상의 심리적 메커니즘에 대해 함께 탐색하는 자세가 치료의 출발점입니다.

특히 인지행동치료(CBT)는 건강염려증과 신체형 장애에 모두 높은 효과를 보입니다. 구체적인 치료 방법에는 건강 관련 비합리적 사고 확인 및 재구성, 신체감각을 재해석하는 훈련, 점진적 노출(불안한 상황에서 강박적으로 병원에 가지 않도록 연습), 스트레스와 감정 조절 훈련, 이완훈련 및 명상 등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기반 자기관리 앱이나 온라인 CBT 등도 활용되고 있어, 초기 증상이나 시간적 여건상 대면상담이 어려운 경우 대안적 지원 방안이 되고 있습니다.
반면, 약물치료의 경우 항우울제(특히 SSRI 계열)나 항불안제, 때에 따라서는 비정형 항정신병약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증상의 본질이 심리·행동적 측면임을 고려할 때 반드시 전문가의 평가 아래 필요 최소 한도로 사용해야 합니다. 약물 남용이나 의존이 건강염려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치료를 받는 동안 가족과 주변인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자가 내담자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거나 “너무 예민하다”, “그 정도면 아무 일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오히려 “네 불안이 이해된다”, “검사 결과가 괜찮더라도 아직 불편함이 남아있구나”와 같이 공감과 수용의 언어를 전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내담자가 불확실함이나 약간의 건강 불안을 견뎌보는 훈련을 할 때 독립적으로 선택하거나 실천하는 것을 존중해주는 태도 역시 회복에 매우 큰 힘이 됩니다.

무엇보다 신체 증상에 대한 의료적 원인이 반복적으로 부인, 혹은 정상이지만 불안이 계속되는 경우에는 더 이상 단독적으로 병원 순회(의료쇼핑)를 지속하기보다는 심리치료 및 다학제 팀과 연계하여 통합적 접근을 해야 효과가 좋습니다. 최근에는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대학 부설 심리상담센터 등에서 저비용 또는 무료 내담자 평가·치료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으니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끝으로, 병원 검진 결과와 상관없이 건강 불안이 사라지지 않거나, 삶의 질(대인기피, 직장·학교 부적응, 우울, 수면장애 등)이 현저히 저하될 경우엔 혼자 극복하시려 하기보다 반드시 임상심리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의료진과 심리 전문가가 협력해서 신체, 심리 모두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드립니다.

 

건강염려증과 신체형 장애의 자기관리법

신체 감각과 불안에 대한 일지 작성

불안이 올라오거나 신체 증상이 느껴질 때, 그 순간의 신체 변화(예: 가슴 두근거림, 어지럼증 등), 관련 생각(“혹시 큰 병이 아닐까?”), 감정(불안, 걱정), 그리고 실제로 취한 행동(검색, 병원 방문 등)을 노트에 기록해보세요.
이렇게 ‘생각-감정-행동 일지’를 꾸준히 쓰면 자신이 증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불안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점차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인지치료의 핵심 중 하나로, 반복되는 자기 패턴을 발견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건강 정보 제한하기’, 검색 줄이기

인터넷, SNS, 뉴스 등에서 건강 관련 정보 과다 노출은 불안을 악화시킵니다. “오늘은 의료 정보를 검색하지 않는다”와 같이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건강 관련 검색, 커뮤니티 활동을 필요한 시간만큼만 제한하세요.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권유하는 ‘의료정보 공유’도 일정 기간 중단하면 신체 감각에 민감해지는 악순환 고리를 끊는 데 효과적입니다.

신체에 과도한 주의 분산하기

신체 내부 감각(숨쉬기, 맥박, 통증 등)에 계속 집중하면 증상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산책, 음악 듣기, 영화 감상, 미술·요리·원예 등 활동에 몰입하는 시간을 스스로 권장해 보세요.
불안이 올라올 때도 “지금 이 순간, 내가 주변에서 관찰할 수 있는 사물 5가지, 소리 4가지, 촉감 3가지…” 등 ‘감각적 주의 전환’ 훈련을 시도하면 불안의 고리가 끊어집니다.

의학적 확신 추구 행동 통제

건강염려증의 특징 중 하나는 반복적인 병원 방문, 검진 요청, 주변인에게 끊임없이 건강 상태를 확인받으려는 행동입니다. 이런 행동을 할 때 “이번 주는 의사 상담을 1회로 제한하겠다”, “스스로 건강을 확인해도 불안이 해소되지 않음을 기록하겠다” 등 행동 목표를 정하고 실천해 보세요.
또한, 건강에 대한 불안이 생길 때마다 바로 인터넷에 검색하기보다, 10분 동안 ‘불안을 견디며’ 기다렸다 실천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이완요법, 명상 및 신체 관리

복식호흡, 명상, 근육 이완훈련(Progressive Muscle Relaxation), 스트레칭 등 이완기법을 매일 실천하면 신체적 긴장과 불안을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유튜브, 모바일 앱 등에서 관련 가이드 콘텐츠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가벼운 운동, 적절한 수면, 규칙적 식사, 일상 루틴을 유지하는 것도 신체와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기초입니다.

자기 비난 멈추고, 자기를 격려하기

증상이 반복되거나 불안이 심해질 때 “왜 나는 이럴까?”, “이렇게 약해서 문제구나”라는 자기 비난을 하지 마세요. 오히려 “나는 이미 이만큼 잘 관리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와 같은 자기 격려, 자기 수용의 언어를 생활화하면 회복 과정에 긍정적 영향을 줍니다.

전문가와의 소통과 계획 점검

자기관리로 충분히 불안이 조절되지 않거나, 일상 기능 저하, 우울이나 불면, 대인관계 문제 등이 동반될 때는 ‘전문가 상담’을 반드시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전문가와의 정기적인 상담과 치료계획 점검이 자기관리의 안전망이 될 수 있습니다.

 

[참고 및 안내]

본 글은 DSM-5, 이상심리학회 편저 ‘이상심리학’, Barsky & Ahern(2004), “Illness Anxiety Disorder: New Insights and Implications for Clinical Practice”, 대한임상심리학회, 대한정신신체의학회, 주요 대학병원 심리상담센터 자료 등을 토대로 정보 제공을 위하여 작성되었습니다.